북한인권 이제는 말해야 한다 - 여성 인권 / 편집부 editor@digitalmal.com
민최지원 노스웨스턴 대학 국제인권법 석사과정
여성이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국가는 여성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주 과정에서 여성의 몸은 어떻게 대상화되는가. 박해를 피해 국가를 떠난 여성 난민들의 증언은 이 물음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가정폭력, 성폭력,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 이를 묵인하거나 나아가 공모하는 국가의 태도, 이주 과정에서의 인신매매와 성폭력이 그것이다.
얼마 전 입국한 탈북자에 대해 언론은 여성이 전체 탈북자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도했다. 그 이유에 관해 언론은 여성이 남자에 비해 중국 등 제3국의 취업이 유리하고 돈벌이가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성별 분업화된 노동시장에서 겪는 이주 여성 노동자들의 취약성, '불법'의 이름으로 음성시장에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 인신매매나 강제송환의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는 절박성을 간과했다. 그리고 북한을 떠나는 동기를 경제적 사유로 한정해 여성이 국가를 떠나는 다면적인 요인들을 보지 못했다. 가난 때문일지라도 그것이 어떻게 여성의 사회 · 경제적 지위와 관련되어 있는지 그 복합적 층위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탈북여성'이란 범주에 주목해야
'탈북자'는 단일한 대상이 아니라 성별이라는 요소가 엄연한 사실로 존재한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은 1980년대부터 성별화된 이주패턴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연이어 여성난민에 관한 지침서들을 내놓으며 여성난민에 대한 보호를 강조해 왔다. 중국 내 탈북 여성 수를 70%에서 80%로 파악한 시민단체의 통계는 여성과 어린이를 난민의 80%로 파악한 UNHCR의 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입국자 현황에 대한 통일부 통계 역시 여성 비율의 급격한 증가추세를 보여준다. 2002년부터 절반을 넘었다.
탈북 여성의 통계에서 고려할 사항은 남성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성의 노동 공간이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탈북 여성의 노동형태는 농촌지역에서의 결혼이나 동거, 가사도우미, 노래방, 안마방, 유흥업소 등을 통해 비가시화되어 존재한다. 유랑하는 여성의 비율이 높다하더라도 난민 신청의 성별 비율과 실제로 법적 난민으로 인정받는 수는 남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UNHCR은 남성이 아닌 여성난민에 대한 자원 배분을 권고하고 있다. 가족과 이주한 탈북자의 경우 여성이 남성 가족의 일부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남성가장 중심으로 자원이 배분될 경우 여성의 자원 접근성이 떨어지고 여성가장에 대한 인식이 낮아진다. 탈북 여성에 대한 지원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이는 성관계와 음식의 교환을 방지할 수 있고 여성의 기초적 필요에 충실할 수 있다. 생리 용품이나 시설, 산아조절을 위한 정보와 용품의 제공,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 등을 제공하는 것이 여성의 기초적 필요이다.
탈북 여성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은 이주과정에서의 성폭력이다. 브로커는 성관계를 교환의 대가로 하여 탈북여성이 국경을 넘도록 도울 수 있다. 또 여성들은 국경경비대, 인신매매단, 강도, 혹은 남성 난민 등에 의해 성폭력을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탈북자 인터뷰를 위해서 성폭력 상담훈련을 받은 여성 공무원의 충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입국과정이나 난민판정과정에서 일어나는 언어상의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여성을 가족의 한 부분이 아니라 독립된 존재로 인터뷰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간, 성적 학대, 가정폭력의 증언은 가족으로부터의 고립을 초래할 수 있고 가족 앞에서의 증언은 고통스러운 경험이기에 증언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국가를 떠나는 여성들: 성폭력, 인신매매, 강제결혼, 가정폭력
국가를 떠나는 여성 개개인의 증언이 '난민'이라는 법적 범주에 포함되는지 여부는 정치적 과정에 의해 결정된다. 여성이 경험하는 박해('젠더 박해')를 난민 범주에 넣기 위해 난민 수용국의 여성단체, 난민단체, UNHCR 등 인권단체에 의한 오랜 노력이 있어 왔다. 그 이전에 이미 국가를 떠나는 여성이 있었고 여성에 대한 박해를 증언하는 난민이 있었다. 국경은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열리기도 닫히기도 하는 정치적 과정이다. 기존의 난민협약은 남성을 염두에 둔 법적 장치로 여성난민의 요청을 담아내는 데 그 한계를 지녔다.
1951년 난민협약은 신청자가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박해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를 가질 것과 '인종 · 종교 · 국적 ·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신분 · 정치적 의견'에 근거한 박해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박해의 근거로 '성별'은 명시되지 않았다. 이 제한된 규정으로 인해 여성난민의 요청이 거절되는 사례들이 발생하였고 협약에 대한 성인지적 해석의 필요성이 요청되었다. UNHCR과 여러 국가의 '여성난민에 대한 가이드라인' 및 판례는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신분'을 여성에 대한 박해의 근거로 삼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난민협약의 해석에서 '국가'가 아닌 '사인(non-state)'에 의한 박해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가 여성의 난민인정에 있어 중요하다. 여성이 경험하는 박해의 형태는 '사적 공간'인 가정, 지역사회 등에서 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UNHCR은 "지역주민의 차별적이거나 공격적인 행위로부터 국가기관이 효과적으로 보호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을 경우도 박해가 된다"고 말함으로서 사인에 의한 박해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또한 캐나다 연방법원 판례 Canada v. Ward는 "난민법은 박해의 행위자가 국가일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명백히 밝힌 바 있다.
여성이 국가를 떠나는 이유 중 하나는 여성의 경제 · 사회 · 문화적 지위와 연관되어 있다. 북한 여성의 월경행위도 북한의 내부 사회와 깊은 연관을 가진다. 여성이 처한 빈곤의 상황은 다른 형태의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북한사회에서의 젠더박해는 강제 결혼, 성폭력, 가정폭력, 인신매매, 강제결혼 등 사회 일반의 폭력과 강제낙태나 성고문이 행해지는 북한의 감옥('정치범 수용소')이 증언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여성문제가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단순 범죄'가 아닌 '박해'가 되기 위해서는 여성의 보호요청에 국가가 응답하느냐가 중요한 척도가 된다. 다시 말하면 여성문제에 대한 제도적 부재는 난민 판단에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탈북자의 연구물에 따르면 북한에는 '성폭력'에 대한 개념이나 법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성폭력에 대한 제도나 법이 부재한 북한의 사회적 상황은 비호신청자의 난민부여에 관한 법적 판단에 기여한다. 제도의 부재는 정부가 강간이나 성폭력을 용인하는 것이고 이는 국민에 대한 '국가보호의 실패'를 의미한다. 주권은 국가에 의한 국민 보호가 그 본질에 해당하기 때문에 책임을 다하지 않을 경우 난민협약에 가입한 다른 국가가 피난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강제결혼도 '가족'의 맥락에서 발생한다. 이 때 가족은 '여성을 위해' 한 일이라는 점을 내세워 행위를 정당화시키고 온정적인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그러나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강제결혼은 '자유롭고 완전한 동의에 의해서만 혼인할 권리와 최소 연령에 달하기 전에는 혼인하지 않을 권리에 관한 협약'을 위반한 박해이다.
북한당국은 인신매매에 연루된 사람을 공개처형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여성 인신매매의 발원지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2001년 유엔인권이사회 심의에서 북한은 "우리나라에서 옛날 봉건사회와 식민시대 악독한 잔재 가운데 하나인 여성매매는 철저히 철폐되었다. 그 이후 50여 년 동안 여성매매란 존재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북한의 공개처형이 국가 보호의 효율적 집행을 의미하지 않는다. 뉴질랜드의 로저 헤인즈 판사는 난민심사에 있어서 국가의 유효한 보호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신청자의 박해에 대한 가망성이나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가 존재하는 한, 이는 '국가보호실패'를 의미한다. 여성문제는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도 집행단계에서 실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은 중요하다. 탈북 여성신청자에게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가 존재하는 한 국가의 보호기능은 실패한 것을 의미한다.
남성화된 공간으로서의 감옥
감옥은 성별화된 사회적 통제를 반영하는 또 하나의 '사적 공간'이다. 외부로부터 격리된 감옥에서 여성의 몸은 남성과 교도관에 의해 일상적으로 지배된다. 이곳에서 한 개인의 정체성은 번호로 대체되고 집단적 규율과 질서만이 공간을 위해 존재한다. 여성의 행동을 통제하는 사회적 처벌 중 하나는 '수치심'이다. 이라크 수감자에게 행한 미군의 성폭력은 한 개인을 파괴하는 효율적 방식으로서 '수치심'을 동일하게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젠더의 역할은 바뀔 수 있다.
'은밀한 장소'인 여성의 몸은 외부와의 접촉이 제한되는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취약해진다. 남성 교도관이나 남성 수용자에 의한 성폭력의 가능성은 잠재되어 있다. 정치범 수용소의 강간 및 성폭력 사례들이 증언되고 있다. '정치범 수용소'는 국가가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경을 넘은 '위험한' 여성들은 정치적인 존재이다. '반동적인' 정치적 견해 혹은 탈북행위('사상오염')로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된 여성들은 더럽고 불순하다.
잉거 애거의 저서 『파란방』에서 한 여성 난민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치적인 여성을 고문할 때 많은 남성들은 그녀가 창녀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들은 우리가 다른 여성들보다 해방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 어머니와 딸과 같은 여성보다는 창녀를 고문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다."
탈북난민지원단체 '좋은 벗들'의 사례집에도 다음과 같은 교도관의 대화가 등장한다.
"이년이 우리 맛을 못 보았구나. 검사하면 날날이풍은 나타난다. 너 처녀가 옳은가 보자."
정치범수용소의 여성들은 '정치적 이유'로 강간과 성적 학대에 노출되어 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임산부에 대한 강제낙태를 시행하고 있다. 잉거 애거의 설명은 여성 수감자에게 행해지는 강제낙태의 이유를 설득력 있게 뒷받침한다.
"(정치적) 오염은 그녀의 일부인 아이에게 전염된다. 불순함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전이되고 그들은 그녀 안의 아이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살해하고자 한다."
정치적인 여성의 오염 상태는 그녀이기도 한 아이에 대한 처벌로 이어진다. 성고문과 강제낙태는 세계인권선언의 '신체의 자유', '안전의 자유', '고문과 비인도적이고 굴욕적인 처우를 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 박해이다. 따라서 집결소나 수용소의 성폭력을 피해 국경을 넘은 여성,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적이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여성, 송환 후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될 임산부 등이 느끼는 공포는 난민신청 사유로 고려되어야 한다.
탈북 여성의 피난처
탈북 여성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하게 되기까지는 북한 사회라는 송출국의 상황과 중국이라는 수용국의 상황이 경제적 유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여성이 국가를 떠나는 이유에는 남성 난민과 다른 사회 구조적인 측면이 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여성이 국가를 떠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고 여성이 처한 빈곤의 문제는 다른 여성문제와 복합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북한 여성들은 사회적 차별, 가정폭력, 인신매매, 성폭력, 강제결혼 등을 피해 국경을 넘을 수 있다. 또 탈북 여성들은 정치범 수용소의 성고문이나 강제낙태 등에 대한 극심한 공포에 시달릴 수 있다.
북한인권법에 대한 논쟁의 중심은 탈북을 유도하려는 미국의 정치적 의도와 관련되어 있다. 미국이 냉전시대에 취해왔던 난민정책의 정치적 단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국가의 채널을 통해 유랑하는 탈북자의 난민인정 범위를 높이는 일은 중요하다. 피난처를 구하는 박해받는 난민에게 국가의 문호는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북한 여성에 대한 박해는 주요한 박해의 근거로 다뤄져야 한다.